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매년 일기나 별 잡소리를 꾸준히 쓰기는 하는데, 일년을 채우면 모두 다 지우고 버렸었다.

근데 내가 갑자기 사라지면 분명 내 주변 한두명 정도는 이 사이트에 한번쯤은 들어와 볼 텐데, 미술을 안 하는 그 몇 명이 내 욕을 맘편히 하고 눈물을 글썽이려면 어떤 글이라도 필요할거 같았다. 그래서 이 사이트에 잡소리들을 올려보려 한다.

누구도 올 일 없는 곳에 시답지 않은 글이니 별 부담은 없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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내가 어릴적에 엄마는 작은 텃밭을 가꿨다.

그래서 나는 오렌지 나무는 없지만, 방울 토마토 나무가 있었다.

이것저것 작은 작물을 몇 개 심어 놓은 엄마는 땅에 지렁이가 있어야 토마토를 먹을 수 있다고 했다.

땅이 좋아져야 싹이 트고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.

 

흑색의 명도가 셀 수 없이 다양하다는 걸 알 수 있는 임대아파트 동네에 텃밭이 있었다.

덕분에, 나는 높은 해상도로 가난을 지켜 봤다.

괴물이 나올것만 같은 비루한 땅이지만, 지렁이가 이 텃밭 만큼은 비옥하게 만들어 줄 것만 같았다.

그래서 동네 여기저기 땅을 파헤치고 지렁이를 모아 토마토가 심어진 텃밭에 뿌렸다.

 

스물 한 살, 발음 하기 너무 예쁜 나이에 나는 그녀를 좋아했다.

눈을 감아도 사람 얼굴이 보이는 기괴한 현상이 사랑이라는 걸 그때 깨달았다.

그 친구가 작은 텃밭을 가꾼 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비닐 봉지와 비닐 장갑을 챙기고 야산 올라가 흙을 파헤치고 지렁이를 찾아 조심히 비닐에 담았다. 그리고 나는 그 친구에게 지렁이를 담은 비닐 봉투를 선물했다.

그녀도 나처럼 좋은 텃밭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식물을 좋아할 줄 알았다.

 

그때 그녀의 주변을 단속하는 남자선배 하나가 있었다.

내가 그녀에게 보낸 문자들과 지렁이 선물을 알게 된 선배는 사람들 앞에서 나를 놀리며 내 감정이 마치, 학교에 넘쳐나는 이면지처럼 보이게 했다. 나는 그때 다른 놀림보다, ‘심지어’ 또는 ‘게다가’ 다음으로 따라 나오는 지렁이가 모욕에 꼭짓점이었다는 게 힘들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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조용히 음악을 듣고 있었는데 집에 손님이 왔다.

갑작스레 방문한 손님은 미술하는 사람 집인데, 왜 귤껍질만 가득하고 그림 하나 없는지 물었다.

나는 그저 텅 빈집이 좋다고 말했다. 그리고 문득 사촌누나가 생각났다.

누나는 매형한테 그림 갖고 싶다는 말을 못 하고, 틈틈이 소파에 앉아 잡지에 나오는 그림을 오려 액자 담아 놨었다.

난 이해를 못 했다.

음악 하는 매형이 늘 이런저런 소리를 보여주는 집에는 낭만이 이미 꽉 차서 나는 창문을 열고 환기하는데. 굳이 그림까지.

돌연 방문한 손님이 가고, 냉장고가 내는 허밍을 듣다 보니 문 앞에 그림을 두고 싶어졌다.

귀여운 개구리가 해맑게 웃으며 문 앞을 향해 죽창을 들고 있는 그림을.